'겨레의
노래'출판에 부쳐
예술적으로는
대중가요 보다 순수음악이 보다 향기롭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음악보다는 자기들의 가슴을
감동시키는 대중적인 음악을 보다 환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중음악에는 두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국민가요라고 하는 음악이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엄격한
학술적 개념의 분류가 아닌 상식적 분류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국민
가요는 일반적으로 통치자가 자기들의 통치의 필요상
제작하여 국민들에게 보급시키는 음악이다.
과거
일제시대에 우리를 지배하기 위하여 일인들이 만들어
조선인이 애창해주기를 바랫던 가요와 8.15후 통치자들이
자기들의 독재에 국민들이 순응해주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만들어 국민이 불러주기를 요구한 가요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국민이 애청하는 노래가 되지 못했으며
그런 점에서 성공하지 못한 가요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다만
일제말 국민들이 비교적 널리 애창한 일본의 일부 군가가
있었다. 전쟁을 십년 가까이 계속하다보니 염전사상이
번지고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라던 많은 국민들의
심정에 호소하는 요소가 있어서 일제말에는 일부 군가가
국민들 사이에 유행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국민가요는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둘째는
유행가라고 하는 노래가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교적 광범하게 대중들이 애창한 가요였다.
이
노래는 예술적면에서는 낮게 평가 받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인기가 비교적 높았다.
유행가에는
대중의 그때그때의 사회적 심정에 호소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대중에 대한 호소는 주로 저속한 심정적 또는
정서적 호소를 위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그리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음악이라고
할 수 없을것이다.
그래서
본사에서 이번에 새로 기획한 대중문화사업 '겨레의
노래'는 위의 두가지 가요중에서 좋은 점을 찾아 널리
펴보고자 이 방면에 널리 알려진 김민기 선생한테 부탁한
것이다.
한말로
'겨레의 노래'라고 하는 것은 국민가요가 흔히 강조하는
것처럼 건전성을 유지하자는 것이 첫째 특징이다.
그러나
이 건전성이 집권자의 필요에 의해서 집권자가 만들어낸
건전성이 아니라, 민중이 스스로 참여에 의해서 만드는
노래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국민가요는
통치자가 통치의 필요상 스스로 만들어서 국민에게
불러줄것을 바라는 노래이지만, '겨레의 노래'는 민중이
직접 만드는 노래라는 점에서 국민가요와는 차원이
다른 민중의 의식화된 가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둘째,
유행가는 대중이 크게 애창하는 노래이기는 하나 주로
세속적인 정서에 호소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중적이라
해서 꼭 저속한 정서생활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겨레의
노래'는 이 점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민중이
스스로 만드는 노래이기는 하되, 세속적인 정서에만
호소하지 않고 민중이 살고있는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눈을 뜨고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지향하고자
노력하는 의식에서 또 그런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서
민중이 스스로 만들고 애창하는 노래이기는 하되, 세속적인
정서에만 호소하지 않고 민중이 살고있는 시대적이며
사회적인 상황에 눈을 뜨고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지향하고자
노력하는 의식에서 또 그런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서
민중이 스스로 만들고 애창하는 의식화된 노래는 없을까
해서 만들어 본것이다.
그래서
'겨레의 노래'는 종전의 국민가요와 같은 노래도 아니고
또 현재 대중이 애창하는 유행가와 같은 노래도 아닌
이 두 종류의 가요에서
국민
가요의 건전성과 유행가의 대중성을 다 같이 살려 새로운
노래를 창조해보자는 노력의 일단으로써 이번에 '겨레의
노래'를 국민들에게 널리 공모했던 것이다.
다행히
많은 국민들이 호응해주어서 그중에서 특히 좋은 노래를
선택하는데 선정위원들께서 수고를 하셨고, 또 연변의
우리 동포들이 애창해온 몇천곡의 민요를 수집해와서
한권의 책으로 묶어 보고자 한 것이 이번의 책이
되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애창을 바라마지 않는다.
송건호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겨레의
노래 사업을 벌이면서...>
지금,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가깝게만
잡더라도 우리는 개화기 이후 이 출렁임의 폭이 한없이
커져만 왔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격랑속에서 다른 나라로부터 당한 잔인한 죽음이야
그랬다 치더라도 우리가
한부모 형제끼리 저지른 끔찍한 죽임들을 분명히 무슨
미친 귀신에 씌워
한 짓들이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짓들
조차도 서로 남들 핑계로 돌려대며 또 다른 남들을
불러들이기 바빴던 우리는 이제
우리가 한식구였다는 생각을 해내기도 힘들 정도로
이미 너무나 갈래 나뉘어 버린듯 합니다.
출렁임의
폭은 끝에 닿았는데.....
땅도
나뉘었고 사람도 나뉘었고 생각도,노래도 나뉘었고
나뉜 중에 또 나뉘어 이제는
각자의 마음안에서조차 가닥을 못잡아 제마음의 주인
노릇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들이
그동안 들려주었던 이런저런 얘기들만으로는 우리모두의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처절하게 겪어온 우리는 이제 맨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
우리들
마음의 결을 가닥잡는 일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만으로는 해결의 기미가 잘 보이질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자면 우선 서로가 이해할 수 없다며 배척하던 마음의
모습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처음에는 뒤죽박죽일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와 너, 너와 나, 여와 야, 운동권과
제도권, 세대간,계층간등
모든 이분법을 뛰어 넘어 남과 북이 하나로, 그리고
지구상에서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만이라도 먼저 다함께 같이 부를 "겨레의
노래" 한두가락 생겨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라는
낱말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아직은 단언도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앞으로
아무리 숱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아무리 더딘 걸음걸이가
되더라도 우리일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마음의 결을 가닥잡자는
이 일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하찮다고도 할 수 있는 "노래"로 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보고자 하는 이 일을 주선해
주신 한겨레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리며
부디
많은 분들의 따뜻한 도움과 무서운 질책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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