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란 신앙인의 삶의 투쟁에서 우러나는 시의 은율이다. 이 구슬과도 같은 열매는 같은 삶의 정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생생한 삶의 영양소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거룩한 종교적인 노래라해도 그것의 뿌리가 되는 삶의 자리가 우리의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것은 그냥 귀를 스치고 지나기는 바람에 불과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불러온 많은 성가는 이런 무의미한 바람에 불과했다. 그것이 대부분 서구인들의 신앙생활에서 결실된 노래여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런 노래를 부른 자들의 신앙자세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요 내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노래란 대체로 개인의 영이 어떻게 이세와 내세에 있어서 평화롭게 살까 하는 관심을 중심으로 맴돈다.
부유하게 사는 나라들의 관심이란 흔히 개인의 영의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불의한 제도에 억눌려 사는 민중들에게 있어선 그 관심사가 내세보다는 이세, 이 세상에서도 악한 제도를 깨뜨리고 정의로운 제도를 창출하는 데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언제나 정의로운 새 내일을 창출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이 줄잇는다. 사실 성서의 신앙인들의 삶이 철저히 그런 것이었다. 이렇게 사랑과 정의가 차넘치는 미래를 향해 투쟁하며 전진하는 우리들에게 야훼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다. 나타나셔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이룩하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저들을 이끄신다. 저들과 야훼와의 사이에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과 믿음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감격스런 삶에서 갖가지의 시와 음률이 솟아 오른다. 이렇게해서 이룩된 노래란 위에서 말한 종교적인 노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노래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직시하게 하고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용감하게 전진하게 한다.
나는 이런 노래집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군대처럼 일어나 새 역사창조를 위하여 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여기에 비로소 그런 거룩한 노래집이 나왔다. 꿈을 품고 전진하는 젊은이들의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물론 미진한 점이 적지않다. 그러나 “한술 밥에 배부르랴" 출발이 씩씩하고 아름답기에 앞으로 닦고 길러 대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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