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by 선재 posted Jul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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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 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松羅面) 보경사에 있는 고려시대 원진국사(1187∼1221)의 비.
높이 1.83m, 너비 1.04m, 두께 0.17m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83m, 너비 1.04m, 두께 0.17m이다.
송라면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보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723년(성덕왕 22)에 일조대사(日照大師)가 세운 사찰이다. 원진국사는 고려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신씨(申氏), 호는 승형(承逈), 자는 영회(永廻)이며, 원진은 시호이다. 13세 때인 1200년(신종 3)에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로 출가해 동순(洞純)에게서 배웠으며, 1201년 금산사(金山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보경사에 있는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이다. 귀부와 대석(臺石)은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고 비좌(碑座)는 폭이 배면과 거의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엽(單葉) 44연판(蓮瓣)을 새겼으며 그 위에 비신을 얹었다.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고 거북 등에는 육각형의 무늬 안에 ‘왕(王)’자가 질서있게 새겨져 있다. 비석의 위쪽 양끝을 귀접이한 신석(身石) 둘레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석 둘레의 조식은 고려시대 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이수(螭首)가 없는 귀접이 형식도 비교적 하대(下代)에 속하는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보물 107)와 조선시대에 속하는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보물 16) 등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비명은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글씨는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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