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지오층석탑 (聖住寺址五層石塔) 보물 제19호 과 석등, 석계단.

by 선재 posted Aug 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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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오층석탑 (聖住寺址五層石塔) 보물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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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는 탑이 이 탑이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가 기둥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올려졌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성주사지 석등 [聖住寺址石燈] 충남유형문화재 제33호

1979년 7월 3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성주사지(聖住寺址) 오층석탑 앞에 있으며 높이는 2.2m이다. 모든 재료의 형태는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1971년 오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지댓돌은 주변에 있던 판석을 사용하였고, 간석(竿石)은 가늘고 길며 아무런 장식이 없다.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불을 켜는 부분)은 정팔각형에 4개의 문이 있다.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사지석계단 (聖住寺址石階段) 충남문화재자료 140호(5층석탑 바로 뒤에 보이는 것이 금당터 이며 그 앞에 석계단이 있다)

성주사(聖住寺) 금당(金堂)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목에 방울이 달린 석수(石獸)가 있었으나 현재는 계단만 남아 있다. 터만 남아있는 금당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사는 백제시대 사찰로, 백제멸망 직전 붉은 말이 이 절에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면서 백제의 멸망을 예시해주었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다.
현재 절터 에는 건물의 주춧돌을 포함한 많은 석물 이 남아 있는데, 이 석계단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계단은 잘 다듬은 널찍한 돌을 이용하여 5단으로 쌓아 올렸다. 절내의 금당을 오르던 계단으로서, 원래는 양쪽 소맷돌 에 사자상을 조각해 두었다고 하나 1986년에 도난당하여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주사 금당이 백제가 멸망한 후인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돌계단도 이 시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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