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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祈福)을 죄악시 말라”

대안 없는 소모적 ‘기복논쟁’ 이제 그만
“기복은 불교아니다” 주장 불자에 상처
불교의 본질 아니지만 ‘신행의 밑바탕’
논쟁 앞서 ‘높은 단계 수행’ 유도부터

“기복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불교라고 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기복이 불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밑바탕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기복불교(祈福佛敎)’를 놓고 불교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기복불교 논쟁이 몇몇 일간지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른바 ‘기복 논쟁’은 한국불교의 기복성향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홍사성 불교방송 방송본부장·조준호 박사(동국대 강사) 등의 ‘기복신앙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충주대 박영록·동국대 김성철 교수 등 학계를 중심으로 “원시불교에 입각해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논리”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복불교 논쟁이 가열될수록 이를 바라보는 불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대학 입시철에 전국 사찰에서 ‘입시기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아온 불자들은 “그렇다면 그건 다 가짜 불교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특히 절에 가면 당연히 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인등불사, 기와불사, 방생, 천도재, 예수재 등이 기복을 부채질하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면서 혼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기복논쟁으로 인해 재가불자들이 혼란을 겪는 것과 관련해 불교 학자들을 비롯해 스님들은 논쟁이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원칙론적 문제제기와 공방만 있을 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은 “기복이 불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논쟁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라고 논쟁의 폐해를 지적했다.

대다수 학자들 역시 “기복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곤란하다”며 “‘기복불교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로 논쟁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복논쟁을 지켜보는 한편에선 이미 불자들의 의식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복 자체에 대한 논쟁을 펴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부산불교교육대학이 98년 10월에 발간한 소식지에 실린 부산불자들의 신행형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절을 찾는다’는 응답이 38.75%로 ‘복을 받기 위해’ 라고 답한 31.5%보다 7.25%나 많았다. 또 법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설법을 꼽은 응답자(28.25%)가 축원기도를 우선 순위로 생각한다는 응답자(24.75%)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는 표본조사의 한계를 갖고 있으나, 불자들의 의식이 기복불교에만 매몰된 게 아니라는 방증으로 큰 손색이 없다.

따라서 기복불교를 놓고 불교적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을 펼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꿔갈 것이냐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자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복에 천착하고 머무르려는 속성이 타파해야할 대상이지 기복 자체가 사라져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기복을 바르게 활용하고 보다 높은 단계의 수행으로 유도하는 방법의 제시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심정섭 기자

 

“수행방편 인정…가르침 왜곡 안돼” 팽팽

최근 한국불교의 기복문제와 관련해 ‘기복이 불교인가 아닌가’하는 논쟁이 일면서 기도를 통해 복을 기원하고 불교적 삶을 희구하던 많은 불자들이 자신의 신행을 놓고 불교적인가 아닌가를 의심하거나, 자신이 찾는 사찰의 스님은 왜 기도를 강조하는지 혼돈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학계를 중심으로 불교계 인사들에게 기복불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교계 인사들이 말하는 주요 요지를 정리했다.(편집자)

“기복은 삶-믿음 문제 상처뿐인 논쟁 무의미” 종범 스님 (중앙승가대 총장)

기복이라는 것이 불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논쟁으로 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신앙(信仰)’의 종교가 아니라 ‘신행(信行)’하는 종교로, 신앙은 신행과 대립되는 말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기복을 어리석은 행위로, 비불교적이라고 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화엄경] 좥현수품좦에 ‘사람이나 하늘의 무리들은 같이 신앙한다(人天等類同信仰)’라는 말이 나오듯이 신앙은 불교 고유의 개념인 동시에 불교의 기본적인 요소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은 예경과 수복(修福)으로 나타난다. 부처님께 공경의 뜻을 표하고 복을 닦는 행위가 모두 불교인 것이다. 기복이 신비적인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구복(求福)과 작복(作福)은 자력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력적인 것만을 인정하고 타력적인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대승불교 전체를 부정할 수도 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드리는 천도재나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며 드리는 입시기도, 자신의 염원을 담은 방생법회 등등. 이런 것 속에도 조상에 대한, 자식에 대한 복덕을 기원하는 것으로 행위 자체에 보시의 공덕행위가 있는 것이다.

이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극히 편협한 것으로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이러한 신앙을 기초로 보리심의 지혜행과 자비와 서원의 비원행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의 신앙형태에 있어 경쟁적 측면은 경계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불교 본질 호도가 문제 방편으로 수용 말아야” 홍사성(불교방송 본부장)

‘기복신앙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것은 초기불교 입장에서의 시각과 관계없이 불교가 기본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기존의 부처님 가르침을 현시대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하면서 왜곡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종교가 기복 없이 존재하는가’라는 반문이 있을 때, 불교는 이미 본질을 잃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불교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방법을 찾는데 있어 전제사항으로 일부 필요하다면 용인될 수 있을 것이나, 현재 한국불교에서 이를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한국불교는 이미 기복을 수단이 아닌 목적화해서 부추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수단을 목적화한 방편에 매몰되어 있고, 스님들은 부처님에게 빌 것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제 단순히 유루복에 머물지 않고 욕망을 줄여가는 무루복으로 향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불경에 근거하지 않는 현재 한국불교에서의 기복불교는 외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불교의 기본입장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기복불교는 반드시 바꿔가야 할 사안이지, 기복불교에 대한 비판을 논쟁거리로 삼을 일이 아니다.

소승과 대승이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나 실천하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즉 본질이 변해가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방생, 기와불사, 불공, 천도재 등이 그 자체로 잘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복으로 유도하고 이끄는 수단으로 동원하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신행형태 면밀히 분석 잘못된 것 바로 잡아야” 전재성(한국빠알리어 성전협회장)

기복이 공덕을 쌓고 수행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종교의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복적인 요소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방불교 뿐 아니라 미얀마나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에서도 흔히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불교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많은 기복적인 요소가 불교적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남편의 사업성취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아무리 보통사람의 바람이라고 할 지라도 이러한 신행의 형태는 모든 욕망을 끊을 것을 강조하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분명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현재 한국불교의 기복적인 신행 구조는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도 기복에 대한 언급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도와 관련해 우리가 행하고 있는 형태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경전에서는 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이 우주의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이 윤회로부터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기도하고 그 다음에 국가와 국민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런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바탕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자비심의 발로이자 수행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복이 나쁜것은 아닐지라도 이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만 있다면 이것은 확실히 문제다.

이제는 한국불교의 신행형태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시대의 출가자와 재가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복 추구 성향 인정 보시-지계 가르쳐야” 김성철(동국대 교수)

기복을 불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분명히 불교의 밑바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한국불교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은 재가불자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복에 대한 추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재가불자들이 갖는 복 받기를 바라는 욕망의 수준을 조금씩 낮추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진행중인 논쟁을 살펴보면 기복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듯 하다. 기복은 참회와 구복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재가불자의 가장 바람직한 신행방법은 참회라고 할 수 있다. 악업을 닦고 선업을 쌓아가는 과정을 거치며 지혜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승과 소승이 논리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공덕은 선행을 통해 쌓이는 것이고 보시와 지계를 통해 지어 가는 것이다. 불상을 조성하고 불사에 참여하고 절을 하고 기도하는 것은 기복의 한 방법이다.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 함은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단, 기복을 하면서 혹 탐욕으로 가득찬 것인지 아닌지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 변화해야 한다. 기복이 나를 위해 복을 비는데 그치지 않고 계행을 다짐하고 베풀고 불사에 참여하면서 자기정화와 대사회적 회향을 목적으로 하는 기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심정섭·이재형 기자
 

“기복은 신행의 기초적 단계"

교육강화로 신행체계 확립...조계종 포교원장 도영 스님
 

최근 불자들을 혼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복불교 논쟁과 관련, 종단 차원의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 포교정책의 행정수반인 도영 스님은 “기복불교를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며 “일종의 방편을 전체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논쟁의 극단적 흐름을 지적했다. 또 “기복불교에 치중한 사찰이 줄어들고 있으며 각 사찰이 법회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복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들어 절을 찾는 불자들이 단순하게 불공드리고 기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법회를 보러간다고 할만큼 의식이 변하고 있다는 게 도영 스님의 설명이다. 따라서 논쟁을 통해 기복을 난도질하는 것은 불자들의 혼돈을 가중시킬 뿐, 발전적 신행활동 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계종 포교원은 종단의 안정을 바탕으로 신도기본교육을 강화, 불자들의 신행체계 확립을 추진하고 있다. 포교원장 도영 스님은 “신도기본교육 강화가 올바른 신행체계를 확립할 것이며 불자들의 의식을 바르게 세우고 실천행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포교원이 효과적인 신도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재가불자들이 어떻게 수행하고 회향할 것인지’바람직한 신행체계를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스님은 “재가불자들은 기복이라는 방법을 통해 불교에 접근하고 일정정도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 참선·염불·간경·주력 등 수행의 단계를 찾고 있는 것”이라며 기초 신행으로 기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기복을 하나의 포교방편으로 인정해 기복관련 논쟁을 종식할 것”을 주문하고 “바람직한 신행체계확립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스님은 최근 일고 있는 기복불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수렴해 신도교육에 반영하는 한편 교육원과 협의해 본말사 주지 연수 등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정섭 기자

 

기복’의 개념과 의미

“복을 비는 것도 공덕 쌓기의 하나” 

기복(祈福)은 복을 얻기를 기원하고 빈다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그렇다면 복(福)은 무엇이고 빈다(祈)는 것은 무엇일까. 또 복을 빈다는 것은 불교적인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먼저 복은 불교에서 뿐 아니라 유교, 도교, 민간신앙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만큼 그 기본적인 사상에 따라 복을 이해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복을 흔히 행복이나 길운(吉運), 부귀영화·장수·안녕 등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복(덕)을 공덕(功德)과 선행 등 가치 있는 행위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부처님을 ‘자비와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분’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일반적으로 기복을 타력적인 행위, 복을 짓는 작복(作福)과 복을 구하는 구복(求福)은 자력적인 행위로 얘기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행위가 반드시 뒤따르고 그에 대한 업과 공덕이 있는 까닭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이러한 복을 ‘비는 종교적 행위’ 즉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얻을 수 있다”이다. 기도는 마음 속으로 서원을 세워 부처님에게 빌고 구하는 것으로 “부처님 등 숭배대상에 귀의해 믿음을 가지고 참회하여 죄를 소멸하고 감사·보은·찬탄·숭앙 등을 위한 것”이 본래적인 의미의 기도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혹은 방생이나 천도재, 예수재 등 다양한 의식행위를 통해서도 공덕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덕이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기원하기보다는 인류나 뭇 생명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할 때 더 큰 공덕이 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많은 경전에서 부처님이 복 짓는 방법으로 보시, 도덕적인 삶, 인내, 설법, 자비, 구도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간과해선 안될 점이다.

이재형 기자

 
 

유럽불교엔 기복없나?

일부 기복 현존… 법회중심 운영 정착
 

한국에서 기복신앙을 놓고 불교다 아니다라는 논쟁이 일고 있는 지금 유럽불교는 어떠한가. 유럽불교엔 기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면 일정정도의 기복이 존재하는가.

일단 한국 스님들이 상주하는 대부분의 유럽 사찰은 기복을 배제한 가운데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일에서 10년째 포교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베를린 보문사 주지 병오 스님은 “초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현재는 기복에서 완전히 탈피한 상황”이라며 “법회를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하고 보시의 생활화가 정착됐다”고 현황을 전했다. 또 “인근 대부분의 한국사찰에서도 기복신앙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기복불교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 기복불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티베트나 대만불교가 전해지는 지역에선 일정 정도의 기복신앙이 존재하고 있다. 유럽불교에 정통한 이동호 발틱연구소장은 “기복이 주류가 되지는 않지만 일정부분 존재한다”고 유럽불교의 전반적인 상황을 밝혔다. 보문사 병오 스님 역시  “일부 유럽인들은 기도 방법이나 기복적 요소를 상담해오기도 한다”며 유럽인 모두가 기복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기복논쟁을 접하고 있다는 스님은 “한국불교의 특성상 기복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보시의 생활화를 추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정섭 기자 디지털법보 2002. 3. 13 / 6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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