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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민중음악 - 새로운 노래(Canto Nuevo)를 중심으로
월드뮤직 평론가 배윤경


아르헨티나의 로스 파불로소스 캐딜락스(Los Fabulosos Cadillacs), 파나마 출신의 살사(salsa) 가수로 직접 90년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한 루벤 블라데스(Ruben Blades), 뉴욕 출신의 위에 꼴론 등의 밴드와 가수는 대중적인 살사 음악에, 체제를 비판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노랫말로 정치성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그들의 가사나 메시지보다 멜로디와 리듬, 즉 사운드를 선호하고 있고, 창조적인 예술 세계를 벗어난 현실정치에서 미약한 지지기반과 가난한 다수의 민중과 이반된 그들의 삶은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자, 이제 혁명의 70년대를 중심으로 남미 대중 음악 세계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자.(안타깝지만 안데스 민속음악은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남미는 전형적인 제3세계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가진 국가군의 지역이다. 즉, 군부 쿠데타에 의한 독재권력의 장기집권, 극심한 빈부격차, 유럽계 이민과 크리오요(Criollo, 식민지 미대륙에서 태어난 백인) 중심 사회인 것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관료의 부패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치안공백 사이로 마약 수입 같은 지하경제가 여전히 바나나 공화국*의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범죄는 줄어들기는커녕 선량한 사람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반면, 경제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로 한 몫 잡은 관료들과 검은 돈을 챙긴 기업가는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여전히 그들의 눈에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력하고 게으르게만 보이는 것일까?"가난한 사람은 왜 평생 가난해야만 하는가?"라는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의 40년 전 울분 섞인 물음에 왜 여전히 할 말을 잃고 마는 걸까?

......몇몇만 부자로 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린다. 피로 물든 대지는 그들에게 수탈 당한다네...... 광부가 캐낸 돈은 고스란히 이방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네......이 나라를 한가로이 여행하는 양반님들은 가난을 보지 못하네. 그들이 돈을 뿌릴 때 민중은 굶주려 죽는 판에...... (칠레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의 창시자 비올레따 빠라의 노래 '불의의 한가운데를 뚫고(Al centro de la injusticia)' 중에서)

브라질의 대중문화운동 MPB먼저 남미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브라질을 살펴보자. 브라질 역시 1964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노래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고 기존의 관념적 노래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브라질 대중문화운동인 '뜨로피깔리아'(Tropicalia)에서 음악부문의 선두주자는 질베르뚜 질(Gilberto Gil)과 까에따노 벨로수(Caetano Veloso)였다. 이들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적극 활용하였고 대중음악운동 'MPB'(Musica Popular Brasileira)의 물꼬를 터 주었다.  이 과정에서 치코 부아르께(Chico Buarque), 마리아 베따냐(Maria Bethania), 갈 꼬스타(Gal Costa) 등과 같은 가수의 노래는 군부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고 반정부적인 가사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엘리스 헤지나(Elis Regina)는 군부의 압력으로 대중 앞에 동원되었고, 더욱이 그녀는 민정이양이 이뤄지기 3년 전 1982년 사망해 이력상의 오점을 씻어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의 업적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음악적 역량이다. 바투카다(Batucada), 깐돔블레(Candomble), 쵸루(Choro) 등과 같은 전통음악에서부터 삼바(Samba), 보사노바(Bossanova)까지의 여러 스타일에 록(Rock)과 펑크(Funk) 요소를 결합해 오늘날의 리듬 천국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이다.

칠레-노래가 무기가 되어칠레는 형식과 실제에 있어 민주적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의 해방이 식민지 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크리오요의 의지였다면, 저항 가수 빅토르 하라(Victor Jara)를 비롯한 일반 대중이 염원한 민중정부의 수립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의미했다. 인디오의 피가 흐르는 메스티소((Mestizo,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는 더 이상 백인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고 인디오들처럼 '아시엔다'(Hacienda)라는 대농장의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기껏해야 척박한 노동현실 속에서 도시빈민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1970년 메스티소와 인디오가 결집된 민중세력이 크리오요의 과두체제-대지주·외국자본과 결탁한 독점자본·교회·보수우익-를 깨뜨리고 민주적 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실로 1810년이래 160년 만에 실질적인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좌파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부의 무리한 국유화와 퍼주기식 복지정책은 경제상황을 악화시켰고 기득권층과 보수우익의 정치적 공세에 밀려 1천 일간의 해방구는 군부의 쿠데타로 강제 폐쇄되고 말았다.

하지만 1천 일의 해방구에서는 입장권이 없어도, 클럽에서 즐길만한 여유가 없어도 되었다. 가수들은 민중의 열망에 부흥하며 노래 속에 민중을 위한 이념을 실어 민중과 함께 노래했다. 지난 시절,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야만 했던 관제 가요와 미국의 팝송은 철저하게 친미, 친자본, 친정부적인 노래들로 결코 민중의 정서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실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믿음과 실천에서 노래는 마침내 무기가 되었다.

누에바 깐시온의 음악적 영향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군에 대항해 싸운 공화국군의 노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권력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노래를 부르거나 그것을 모체로 저항가요를 만들었다. 또한 이 시대의 노래는 예술가의 현실참여에서부터 민간에 전승된 토착민요와 묻혀진 원주민 인디오의 신화와 전설을 발굴해내는 작업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빅토르 하라는 73년 쿠데타로 산화했지만 그의 재단(財團)이 부인 조안(Joan Jara)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매년 추모공연에 인띠 이이마니(Inti Illimani; 이이마니山의 태양), 낄라빠윤(Quilapayun; 수염기른 세 사람), 야뿌(Illapu; 천둥) 같은 후배 그룹들이 누에바 깐시온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후배 밴드 오르티가(Ortiga), 바로꼬 안디노(Barroco Andino), 엔뜨라마(Entrama), 트란시엔떼(Transiente), 꼰그레소(Congreso) 등의 그룹들에 의해 온전히 계승되었고 보다 클래식적인 기법과 폴크로레(Folklore)의 토속적 선율과 리듬을 결합해 음악적 완성도와 연주력이 높아졌다.

남미에 퍼진 쿠바의 음유시쿠바에선 누에바 뜨로바(Nueva Trova), 즉 새로운 음유시운동이 있었다. 혁명정부는 사회주의 정권의 문화예술 창작집단인 <아메리카의 집>(Casa De las Americas)과 같은 국책지원을 바탕으로 1959년 혁명정신을 전체 대중에게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음유시는 혁명 이전까지 미국의 환락가인 쿠바 내 클럽의 라틴재즈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es),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 노엘 니꼴라(Noel Nicola) 등과 같은 음유시인들은 자국 내 <아메리카의 집>을 통해 민족정신의 자양분을 1백 년의 역사가 넘는 뜨로바에서 찾았다. 이들의 노래는 멕시코에서부터 볼리비아, 칠레에 이르기까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환영받고 있다.

한편 독재자 바띠스타와 함께 쿠바를 떠난 대중음악도 있다. 손(Son), 살사(Salsa), 맘보(Mambo) 등과 같은 소위 아프로-쿠바 재즈 스타일의 중미 대표적 댄스음악이 쿠바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반(反)카스트로적인 살사의 여왕 셀리아 크루스나(Celia Cruz),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같은 미국 국적의 쿠바출신 가수들은 쿠바의 유화적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쿠바 입국공연을 거부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 내 쿠바 사회집단의 정치적 보수성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과의 국교단절과 미국의 금수조치로 음악적 다양성이 쿠바 내에서 현저하게 줄어든 점도 문화예술의 교류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우루과이-추방당한 가수우루과이의 1970년대 정치상황 또한 동시대적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칠레 누에바 깐시온에도 참여한 바 있던 다니엘 비글리에티(Daniel Viglietti)는 그룹 로스 올리마레뇨스(Los Olimarenos)나 가수 알프레도 시타로사(Alfredo Zitarrosa)와 함께 군부 쿠데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의 반민중적인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한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지대했던 알프레도 시타로사는 1976년 군부에 의해 추방당한 뒤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등지를 전전하다 비로소 민정이양이 약속된 1984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시타로사는 1989년 사망)  

꺼지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저항음악탱고의 나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는 현실참여의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체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민중 속에서 지지를 획득하며 성장한 노래가 있다.

유빵끼(Atahualpa Yupanqui, 1908∼1992)는 메스티소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고 유럽의 강권적 문화유산의 틀을 깨고자 인디오의 길(Camino Del Indio)을 선택하였다. 자신의 이름 또한 본명인 엑또르 로베르또 차베로(Hector Roberto Chavero) 대신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에 맞서 싸운 옛 잉카제국의 역대 왕의 이름에서 차용했다. 주로 대지와 바람, 그리고 인디오의 삶을 노래한 유빵끼의 노래는 후배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로 살아있다.     비록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노래는 1940∼50년대 페로니즘(peronism)의 혜택을 받고 성장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은 바 있지만, 페론의 시대가 끝나고 군부독재 기간 중 탄압을 받는다. 체제 비판적인 좌파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에게 감금과 고문, 의문의 실종 등이 7년여에 걸쳐 일어났고, 레온 히에꼬(Leon Gieco)는 이 군부의 더러운 전쟁(La Guerra Sucia) 기간 중 아르헨티나 누에바 깐시온의 기수로 등장해 그 저항의 목소리는 결코 낮추질 않았다.

노래에 담긴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이고 숭고함을 내포한다고 해도 정작 음악성이 없다면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Canto Nuevo)는 특정 계급이나 인종의 노래가 아닌 메스티소와 인디오, 그리고 아프리카의 후손들이 연대할 수 있는 노래였다. 국경과 인종, 계급을 뛰어넘어 근로 대중이 호응할 수 있는 쉬운 노래인 것이다. 끝으로 레온 히에꼬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보자.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Solo le pido a Dios)
레온 히에꼬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괴로움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아무것도 못하고 외로이 방황하다 죽게되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내가 고통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무서운 발톱이 나의 행운을 할퀸 다음에야다른 얼굴의 상처를 그리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전쟁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모든 가난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남아있는 날 때문에 무관심하지 않고비록 몇몇에 지나지 않는 배반자일지라도쉽사리 그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바나나공화국(Republic of Banana) : "단일 품목 수출에 의존해 경제가 움직이는 나라". 남미 일부국가에는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바나나가 넘쳐나 별다른 수고없이 바나나를 수확하여  미국으로 수출해 나라경제를 유지해왔다. 따라서 이들 국가경제의 사활은 바나나를 먹는 미국 걸려 있다. 만약 바나나에 대한 시장상황이 변화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스페인 식민통치 시절부터 왜곡되기 시작한 남미의 경제구조는 미국과 기득권 세력의 이윤추구를 위해 더욱 왜곡되어 일명 '바나나공화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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