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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주 길따라 인연따라 [18] - 민중음악가 박종화
 2016년03월09일 전라도닷컴  한송주 기자 


음반 <고난의 행군>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가객 박종화. 자신의 노래 ‘갈 길은 간다’의 가사처럼 “모든 것을 내주고 갈 길을 걸어” 왔다.

광주사람들은 그를 ‘오월가객’이라 부른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민중가요를 만들고, 부르고, 채집해 왔다.
이번에 광주민중항쟁을 노래한 민중가요 14곡을 모아 음반으로 제작했다.
지난 연말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오월음반 발매기념 음악회에서 그는 “민중항쟁 정신을 노래로 역사화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창살 안에서 우유갑에 악보 그리던 시절

그 자신 ‘투사’다. 1988년 전남대 오월특위 간부로 활동하면서 거리투쟁을 하다가 붙들려서 옥살이를 했다. 창살 안에서 우유갑에 악보를 그려가며 민중가요를 만들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길이 되었다.
<분노> <고난의 행군> <바쳐야 한다> 등 세 권의 창작가요집을 내 민중가객으로 뜬 뒤에도 다시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우리 민족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노래한 <고난의 행군>이 국가보안법에 엮인 것인데 그야말로 이때부터 그는 고난의 행군을 줄기차게 해왔다.
그동안 200여 곡이 담긴 작곡집 9권을 내고 수많은 발표회를 갖고 30여 장의 음반을 만들었다. 그의 노래 ‘갈 길은 간다’의 가사처럼 “모든 것을 내주고 갈 길을 걸어 온” 것이다.

박종화 가객은 개인의 음악활동에 만족하지 않고 시대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 당대 현장에서 애창되다가 사라진 민중가요를 발굴하고 재현하고 기록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실이 이번에 광주시와 5․18단체의 지원으로 햇빛을 본 <5․18민중항쟁 정신계승 기념음반1 -오월>이다.
이 음반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 출전가’ ‘오월의 노래’ ‘그날이 오면’ ‘목련이 진들’ 등 모두 14곡이 실려 있다. 노래들은 처음 불렸던 그대로 복원했으며 여러 손을 거쳐 편곡된 부분은 도려냈다. 그리고 음반과 함께 노래에 담긴 사연을 관련자들의 증언으로 조명한 책자도 곁들여 펴냈다. 이 민중가요 음반은 5․18 4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노래 100곡 수록을 목표로 계속 만들 계획이다.

사라진 민중가요 발굴·재현·기록 작업도

음반발매 기념음악회에서 5․18유공자와 시민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오월 그날을 절절히 재체험했다.
한 참석자는 “백 마디 언설보다도 한 소절 노래가 우리의 가슴을 훨씬 힘있게 울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노래를 통해 오월정신을 기록한 박종화 감독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해 박종화 감독은 음반 제작 과정에서의 성과를 오월가족 앞에서 들려줬다.
“만든 지 30여 년이 된 음악들을 다시 정리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투쟁성이 강한 곡이 느슨하게 변형되거나 원본 자체가 없어진 게 수두룩해 애를 먹었지요. 그동안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았던 ‘동지’라는 노래의 주인공을 수소문 끝에 밝혀냈는데 전남대 운동권 출신 박철환씨였어요. 또 곡목만 알려졌던 고 범능스님(정세현)의 ‘친구2’ 원본을 찾아내 복원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단종되어 부품조차 없는 녹음기를 분해·조립하기를 반복한 끝에 릴테이프에 걸어 범능스님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살려내고는 일행들과 함께 환호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그는 악보와 음반 속에만 있지 않고 현장 무대에서 땀흘린다. 오월의 거리에 나가면 언제라도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5년째 오월무대를 총감독해 왔다. 그가 ‘박감독’으로 불리는 이유다. 2010년 5․18 30주년 행사를 지휘하고 2012년부터는 전국 오월창작가요제를 창안해 지휘했다.
오월맞이로 기자가 곤드레해져서 금남로나 망월동에 기웃대면 어김없이 단아한 몸집에 총기 있는 눈빛의 박 감독을 마주친다.
“박 감독, 여전하시구만.”
“성도 여전하시네요.”
우리는 손뼉 한번 마주치고 각기 갈 길을 간다. 박 감독은 공연장으로, 기자는 주막으로.
기자와의 인연은 1995년 박종화의 작은 음악회 ‘시 하나 노래 하나’에서 싹텄다. 당시 만만찮은 음유시인의 끼에 내심 찬탄했던 바, 거하게 어우러진 뒤풀이 자리에서 광주의 내로라는 소리꾼 시인 가객들이 입을 모아 그의 앞날을 축원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대대로 그는 착실히 성장했는데 한 목표를 향해 올곧게 나아가면서도 쉬운 여정을 타성대로 밟지 않고 시절마다 다양하고 참신한 행각을 선보였다. 기자는 만날 때마다 새 면모를 드러내는 팔색조 같은 그의 변신에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민중과 따로 놀면 민중노래가 아니제”

오선지를 그릴 줄 몰라 초등학교 음악책부터 학습했던 손방 딴따라가 십년 새 작곡집 9권의 금자탑을 이룩한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타고난 재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다 비교적 단순한 통기타 가요로 그치지 않고 관현악곡을 만들고 지휘하는 데 이르렀다면 생이지지의 천혜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0년 5․18 20주년 음악회에 전에 없는 관현악 연주가 펼쳐졌다. 박종화 창작관현악 ‘오월에서 통일로’ 공연이었다.
통기타가수 박종화가 관현악단 작곡가 지휘자가 되어 있었다. 기가 차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몇 마디 대걸었었다.
“멋 허는 짓거리여, 시방? 얼척이 없네이.”
“아따, 민중노래라고 맨날 꽹과리고 통키타 간디요. 가끔은 깽깽이도 뜯고 막대기도 젓어야제. 민중음악도 인자는 거칠게만 나가지 말고 세련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보요.”
“그래도 현장 노래라면 서릿발 치고 피가 찍찍 나야제. 봄바람 맹키 풀어지면 쓰간디.”
“술에 물탄 인생이 누군디 그러실까. 민중이 봄바람 타면 소리꾼도 봄피리 부는 게 맞지라우. 따로 놀면 민중노래가 아니제.”
그랬는데 얼마 뒤에는 녹록잖은 글솜씨를 드러내 주위를 또 한번 놀래켰다.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축전에 다녀와서 《지금도 만나고 있다》는 시집을 냈다. 이 시집은 7박8일 동안 북부조국을 방문해 우리의 잃은 국토와 헤어진 겨레를 만난 감회를 담담하고 세세하게 그려낸 탁월한 기록이었다. 많은 이들이 참여했지만 곧 바로 가슴 뭉클한 방북일지를 상재한 것은 박종화 가객이 유일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바쳐야 한다》(1992년) 《서글픈 고정관념》(1999년) 등 2권의 시집을 냈고 그 전에 음악이론서 《나의 사랑 나의 노래》, 산문집 《사색과 함께 노래와 함께》를 출간한 적이 있었다.
그의 글은 그의 노래처럼 진솔하고 담백한 울림을 준다. 시 ‘백두산 곽밥’의 일절이다.
<백두산 중턱에서 곽밥을 먹습니다/ 들쭉과 개꽃들이 흐드러진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앉아/ 곽밥을 먹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는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로 곽밥을 먹습니다/ 태어나 이보다 더 맛있는 곽밥은 없었습니다/ 생애 최고의 소풍입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글서예를 들고 나와 흥행몰이를 했다. 어느 사이 붓을 갖고 놀았는지 이 시인가객은 2007년에 느닷없이 박종화 한글서예전을 광주에서 열더니 2년 뒤에는 서울에까지 겁도 없이 진출해 판을 벌였다. 그리고 2015년에 또 다시 광주와 함평에서 세 번째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쯤해서 기자는 “에이, 징헌 사람!” 하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다. 뒤에 듣자니 그는 붓맛도 상큼해 내건 작품이 며칠만에 모두 팔렸다고 했다. ‘마이티 박’이라는 별명이 새로 따라붙었다.

가족 몰래 소를 팔아 음반 뒷돈을 댄 친구도

고난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갈 길을 가는 그를 모른 체할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시민과 친구들이 그의 울이 되어 주었다. 애초에 옥중 창작품을 앨범으로 녹음할 때부터 후원이 따랐다. 출소 후 첫 앨범 <분노>를 만들 때 녹음실은 엄두도 못 내고 공안 당국의 눈을 피해 전남대 강당에서 기타 하나 들고 작업을 하는데 어쨌거나 자금이 문제였다.
이 처지를 본 친구가 가족 몰래 소를 팔아 뒷돈을 댔다. 감복한 그는 그야말로 소울음을 울면서 동지들의 뜻을 받들어 어떤 시련에든 소 걸음으로 갈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동지애로 박종화 후원회가 결성돼 20년 동안 십시일반으로 오월가객을 뒷바라지 했다.
얼마 전 이 후원회는 해체됐다. 박씨가 스스로 나서 간곡히 부탁해서였다. “제가 전처럼 활발히 활동도 하지 않는데 계속 신세를 질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민중가요를 발굴 채집하는 하는 사업은 광주시 등에서 도움을 주니까요. 지난 해말 그동안 저를 보살펴 주신 동지들과 선배분들을 모시고 깊은 감사를 드리며 작은 음악잔치를 벌였습니다.”
눈이 참 푸지게도 오는 날, 가객이 머물고 있는 함평군 월야면 백야리에 찾아갔다. 가족들은 서울에 살고 그 혼자 작업하다 놀다 하며 자적하고 있다고 했다.
“함평으로 내려온 지 한 십년 됩니다. 대동면 산골짜기 농막에 있었는데 작년에 인기척 있는 동네로 내려왔어요. 산중이 좋긴 한데 아이고 그 놈의 풀베기 징해서 더 못 버티겠습디다. 오월노래 앨범 작업을 일차로 마쳐놓응께 숨 좀 돌리겠구만이라우. 근디 어쩌까, 지가 곡차 끊은 지가 좀 되야서 마실 것도 없는디. 오랜만에 노래나 한판 깝시다.”
누가 노래꾼 아니랄까봐 디립다 방 구석에 세워놓은 기타를 들더니 예의 깊고 우렁찬 목청으로 ‘지리산’을 불러댄다.
옛 생각이 나면서 슬슬 피가 끓어 오르는데 맹숭한 입으로 박을 맞추자니 신바람 영~이다.

쌍둥이 아들도 통일노래 음반 내 ‘대박’

바람벽에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하는 사진이 붙어 있어 정체를 물었다.
“아, 우리 쌍둥이 아들! 쟈들이 진짜 스타여라우. 지금은 대학교 댕기는 쌍둥이 아들 단이와 결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앨범을 냈다는 거 아니요. 내가 작사 작곡하고 그놈들이 일부는 작사하고 해갖고 둘이 합창을 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는 거 아니요. 아, <손석희 시선집중>에도 나오고 전국적으로 주문이 쇄도해 CD가 절판되다시피 했당께. 애비는 죽쑤고 있는디 아들놈들은 방방 뜨고, 판이 그렇게 된 것이요.”
어느 중생도 판끝은 새끼 자랑이더라. 사연인 즉, 박 가객은 2005년 봄 <단이와 결이의 통일노래 평양여행>이라는 음반을 냈다. 당시 가객이 우리 2세들이 부를 통일노래를 만들자고 마음먹고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쌍둥이 아들을 겨울방학 동안 광주 작업실로 불러들여 삼부자가 공동창작을 했다.
“어린이를 위한 통일노래가 드물다는 생각에 무대포 짓을 또 저질렀지요.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의 소원은 통일’만 부르고 있어야 겠어요. 아이들과 겨울방학 두 달 동안 매일 4시간씩 노래 연습을 하고 녹음작업을 했지요.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랫말도 지들보고 써보라고 하고 통일에 대한 대화도 자주 가졌어요. 힘들어 하면서도 잘 따라주니 대견합디다.”
음반에는 ‘소풍 가요’ ‘어휴, 골치 아파’ ‘통일시켜 주세요’ ‘통일열차’ ‘늦기 전에 악수해요’ ‘단이와 결이의 평양여행’ 등 10곡의 동요가 담겨 있다. 직접 틀어 보니 재미도 있고 뜻도 깊은 노랫말에 경쾌한 가락이 맑은 목소리에 실려 듣기에 좋다.
광주 노래판도 추억하고 창작력이 말라가는 요즘 판박이 세태 이야기도 하다가 해가 설핏해져 집을 나서는데 마당에 나뭇가지에 지붕에 고샅에 눈이 천지백이다.
“워매, 눈 좀 봐라이. 주막 들르지 말고 얼릉 가씨요.”
“그래, 큰일 하니라고 애썼승께 당분간 푹 쉬소. 폭설이 훤조해도 갈 길은 갈라네.”

글 한송주 대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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