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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9 20:16

천생연분 - 박노해

조회 수 1015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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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박노해 작시,
음반: 노동의새벽(극단현장)

 

천생연분
박노해 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 걸로야 TV 탈랜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 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써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꽂이야 학원강사 따르것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며칠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삼년 넘게 그 흔한 쎄일샤쓰 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숀 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데기로 동료들을 몰고 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 김치까지
내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좌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끄만 당신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수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휩쓸려 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른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드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 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꺾어 물고 푸성귀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로 지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우리는 감로로 공양하나니 우리에게 죽음도 이미없도다 - Designed by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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