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냐
박노해 작시,
음반: 첫새벽 (민요연구회)
철새도 아닌데 뜬구름도 아닌데
이 공단 저 공장을 떠밀려 다녔지
여기나 저기나 목메인 기름밥 낯설은 얼굴들의 냉대
몸서리쳐지는데 또다시 떠나야하나
철새도 아닌데 뜬구름도 아닌데
이 공단 저 공장을 떠밀려 다녔지
일터를 쫒아 지나온 세월은 서러운 눈물의 밤일뿐
이젠 서러움 딪고 내발로 내가 설거야
철새도 아닌데 뜬구름도 아닌데
이 공단 저 공장을 떠밀려 다녔지
꼭 마주잡은 이 여린 손들을 결단코 놓지 않을거야
이젠 떠날수 없어 내발로 내가 설거야
떠다니냐
박노해 시
철새도 아닌데
뜬구름도 아닌데
일찌기 제 먹을 것 찾아
노오란 고향길 눈물 적시며
서울로 서울로 떠나왔제
철커덕 쇳소리가 귀에 익을 때쯤
세 깨 식권비와 매점 외상값 제하고 난
몇 푼 박봉이 나를 밀어
정들 만하면 시말서가 등을 떠밀어
이 공단 저 공장 떠밀려 다녔제
여기나 저기나 목메인 기름밥은 마찬가진데
한 곳에 정붙여 지긋이 있자 해도
왜 이리도 떠밀고 내차는 게 많으냐
이젠 옷가방 하나, 이불보따리 싸매 들고
벌건 대로를 죄인처럼 헤매이기엔 진절머리나,
낯설은 얼굴들과 냉대를 가슴에 안기엔
몸서리쳐지는데
또다시 떠나야 하나
눈을 들면 미소짓는 달덩이 얼굴들
내 손때 묻은 기계를 잡고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찾아들고, 사람대접 받는
그런 일터를 꿈꾸는데
아 이젠 떠날 수 없어
이젠 더이상 떠다닐 순 없어
이리저리 뿌리째 떠밀려 다닌
지나온 세월은
지울 수 없는 상처뿐이야
설운 눈물의 밤뿐이야
곯은 육신뿐이야
또다시 나를 팽개치는
이따위 해고통지서에 꼬꾸라질 순 없어
철새도 아닌데, 뜬구름도 아닌데
이젠, 이젠 뿌리치고
내 발로 내 자릴 설거야
당당하게 당당하게 맞서며
마땅히 찾아야 할 내 자리를 찾아서
이젠 다시 팽개쳐질 수 없는
꼬옥 마주잡은
이 거칠고 여린,
뜨겁고 힘찬 손들을
결코 놓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