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박
박노래 작시,
음반: 노동의 새벽 (극단 현장)
통박
박노해 시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날개 칼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