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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2:12

단순조립공 - 김영환

조회 수 1897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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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조립공.
작시: 김영환, 작곡: 김호철. 


신나게 돌고 열나게 돌고
몇달전 꾼돈은 언제 갚을거나
밀리고 밀려 쫓기고 쫓겨
단순조립공 꿈과 희망은 바스러지누나
욕쟁이 이과장 그 눈빛에
하루하루 기분은 피스따라 도네
불량을 알리는 부저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나는 단순조립공  

돌려보고 봐도 두들기도 돌리고
자동기계들 쌕쌕거리는 이 라인 저 라인
홀로 계신 우리 엄마도 이내 젊음도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 다 돌아가누나
이제는 모두가 돌아가네
빙글빙글 돌아가네 자꾸 돌아가네
홀로 계신 울엄마도 이내 젊음도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 다 돌아가누나
콘베이어 벨트에 실려 다 돌아가누나 

   
단순조립공의 하루 - 김영환. 

종종 걸음의 출근길 출근카드가
타임리코더에 덜컥 찍히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직 우리가 아니다
이름을 수위실에 맡겨 두고
예비 종 울리면 작업장에 늘어서
조례를 선다
멸시천대 눈보라로 날리는 제조과
라인 옆에 줄지어 서서
‘우리는 생산 활동을 통하여 국가사회에 이바지한다
이를 위하여 규율과 예의를 바르게 하고
기업을 전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참배를
사장님 계신 일본열도를 향하여 하고
‘힘차게 일합시다’를 복창하고 나면
컨베이어는 끝없이 밀려와
늦잠으로 아침을 거른
빈속을 훑어 내린다   

돌려보고 박고 돌리고 두들기고
모터조립계 내압시험기 앞에서
자동 드라이버 쌔액쌕거리는 이 라인 저 라인
돈용이도 은숙이도
얼마 남지 않은 내 젊음도
혼자 계실 어머님 모습도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이제는 모두가 돌아가는 것뿐
대치근무 일요일의 약속은 어떡할 거냐    

신나게 돌고 열나게 돌고
몇 달 전 꾼 돈은 어찌 갚을 거나
라인에 밀리고 생산량에 쫓겨
단순 조립공의 희망과 꿈은 점점 바스라드는데
욕쟁이 이 차장 눈빛에
하루의 기분은 비스 따라 도는데
불량을 알리는 버저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나는 단순 조립공  

오전 휴식 10분
휴지를 대동하고 화장실로 달려가면
이미 그곳은 만원사례
암표도 새치기도 할 수 없는
그곳에 발을 구르며
담배 한 대 꼬나물고
모닝 똥 생산에 돌입해도
생산 불량, 기동정지다
왜 이럴까 이 궁리 저 궁리 해보지만
결국 작업종이 울리고서야 돌아간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생산의 즐거움
점심시간 40분
줄 서고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나면 작업 종
인두에 납이 녹듯
하루가 녹신녹신 녹아 가는 오후
한 차례 휴식이 지나가면
하루해가 기운다
잔업이 남았는데
기운은 다 빠지고
날이면 날마다 생산부족을
강조하는 반장의 종례가 끝나면
비좁은 탈의실의 전투가 시작된다
바쁜 오늘은 인파이팅으로
달겨들어 옷을 입는다   

출출한 퇴근길 모여드는 통닭집
겨우 닭똥집에 소주 두어 잔
함께 내면 삼백 원
이곳에서 우리의 희망은 익어 간다
우리들만이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이 기막힌 일들을 몸으로 쓸어안고
가난에 찌든 떨어진 목장갑으로
어루만지며 비로소
이 길고 잔혹한 기다림의 의미를
알아챈다
우리 모두가 무엇이 우리를 끝없이 돌게 하고
힘차게 힘차게 일할수록
점점 죽어 가게 하는가를
갖은 욕설, 일당 이천 칠백 이십 원
어용노조 치하에서 고난을 받는 우리지만
보고 듣고 우리는
아무 것도 잊지 않는다
잠 속에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1984∼5년 경에 나는 부천에 있는 신한일전기라는 짤순이(탈수기) 나오는 회사에 단순조립공으로 취업해 있었다. 노동운동을 하려고 소위 위장취업을 했었는데 성과는 적었다. 매 맞고 터지고 쫓겨났다. 나는 이 시를 해고된 후 출근투쟁을 할 때 배포한 소식지에 실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에게 이 시가 얼마나 가슴에 닿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회사의 구사대조차 “김영환이 그놈, 글은 제법인데” 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후 나는 복학을 해서 15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개업했다. 어느 날 낑낑대며 사랑니 발치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자 수화기에서 몹시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 당신 시가 노래가 되었어요. 꽃다지 공연 테이프에 <단순 조립공의 하루> 라는 노래가 실려 있어서 설마 하고 살펴보니 당신 시에 누가 곡을 붙였잖아요.”
당시 아내는 연대 앞에서 ‘서림’이라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서점에서 소위 운동권 노래 테이프도 함께 팔고 있었는데, 그 노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나는 한때 노동현장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써왔고, 이를 김해윤이라는 필명으로 『따라오라 시여』라는 시집으로 낸 적이 있었다. 많이 팔린 것도 아니고 문단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처녀시집이었는데, 그래도 누군가가 나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다만 이 노래가 노동현장에서 널리 불리고 사랑받는 노동가요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쁘게 여길 뿐이다.  

김영환 1955년 충북 괴산 출생. 시집으로 『따라 오라  시여』,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 『불타는 바그다드의 어머니』 등이 있다. http://www.kyh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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