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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전도자 만나면 불쾌... 이유가 있다
[서평] 오강남 <종교란 무엇인가?>
오마이뉴스 12.10.13 손영대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엄밀한 말해 헤어짐도 없는 것이리라. 특정 종교, 특히 기독교를 전도하는 낯선 이와의 일회적 만남에서 대화는 대부분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기독교 전도자와의 만남 후에 남는 불쾌한 기억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일방적인 설교로 일관하는 전도자. 애초에 그들은 왜 나에게 말을 건 것인가. 우선 내가 대학시절에 겪었던 몇 가지를 일화를 소개한다.
내가 만난 다양한 전도사들
#1

"교회 다니시나요?"
"아니요"
"왜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나요?"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무신론은 사악한 이론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지는 거 모르시나요?"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벤치에 앉은 나에게 그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나 먹힐 논리로 설교한다. 나는 갑자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쁜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2

"교회 다니시나요?"
"아니요, 저는 불교신자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나의 종교를 인정하고 돌아설 거라 생각했다.
"불교는 우상숭배이자 미신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복음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는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종교적 다원주의에 입각해서 나도 쏘아붙였다.
"타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요? 왜 자신의 신앙만이 옳다고 보는 겁니까?"
"중요한 것은 진리입니다. 불교사상은 진리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아 내가 너무나 순진했구나.'

#3

"교회 다니시나요?"
"네."
"어느 교회 다니시나요?"
"학교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그 교회보다는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더 훌륭한 분이에요. 우리 목사님의 말씀을 꼭 들어보셔야 합니다."
"저는 제가 다니는 교회를 다닐 겁니다."
"아니, 우리 교회로 옮기세요. 우리 교회가 더 좋은 교회입니다"
그로부터 몇 년간 나는 누군가가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오면, 안면몰수하고 일절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안해 할까봐 다소 미안한 맘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 대응하는 순간,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그들이 앗아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

"교회 다니시나요?"
"왜 전도자들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신앙적 체험만을 강요하려는 겁니까? 그런 설교를 한다면 저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합니다."
"저도 그런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전도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쾌하셨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저는 대학원에서 기독교 신앙을 공부하고 있어요. 나중에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싶은데, 참 어렵네요."
그는 이전에 만난 사람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논박하고 설교하고 강권하기보다 기독교도의 잘못된 선교방식에 대한 나의 비판을 차분히 경청하였다.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도 했고 고맙다고도 했다. 그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의 기독교 전도자들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다소 누그러졌다.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기독교의 전도 문제와 관련하여 <종교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독실한 크리스찬인 오강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침을 가하며 전도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일갈한다.
"노골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의식적으로나마 여전히 이기적 동기가 그 바탕이 된 전도 활동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누구를 '우리' 교회에 인도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 개인에게 '플러스'가 된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 심저에는 그가 '우리 편'에 가입하는 그 자체가 '우리 것'이 '그들의 것'보다 더 좋고,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하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승리한 것을 입증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적 우월감을 고취시키고 자기 그룹의 집단적 에고의 깊은 면을 만족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집단적 쾌감이랄까 승리감이 전도에 다분히 심리적 자극제의 역할을 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중략)-

남에게 '전도'하기 전에 나 스스로 먼저 올바른 길, 참 방향을 바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일방적 입장에서 발견한 것, 체험한 것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억지에서 벗어나 서로 대화를 통해 실재의 이런저런 측면을 이해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줄로 안다"(257쪽, 261쪽)
공존, 조화, 평화를 위한 종교적 다원주의의 길
신도 성폭행, 교회세습, 일부 목사들의 정치적 편향성 등 한국의 기독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물론 종교인의 문제가 모두 기독교 목사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승려들의 도박 문제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종교인 문제의 대부분이 목사들의 처신이나 교회의 구조와 관련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기자가 서평을 쓰면서 인터넷으로 종교인 범죄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한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 사이트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반기련)'이란 단체였다. 나는 이런 단체가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이곳에서는 회원 설문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질문은 '기독교안티가 된 이유는?' 이었다. 세부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배타성 때문 ② 세습과 족벌경영 때문 ③ 헌금의 강요 때문 ④ 인간성 말살 때문 ⑤ 지도층의 타락 때문 ⑥ 부조리를 알고 나서 ⑦ 기타.
총 투표자 7545명 중 1위는 '배타성 때문'(42.3%)로 다른 항목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기독교에 비판적인 수많은 시민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문제 삼기보다 배타성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태도는 심리적 우월성 아니면 두려움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비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적 차이를 차이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상대주의적 태도를 키우게 되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이고 다원적인 태도는 세계사적으로 요청되는 바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배타적인 20세기에 대한 인류의 반성적 성찰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 있어서만은 아직도 시기상조인 것 같다. 종교적 충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 특정 나라가 다른 모든 나라보다 절대적으로 뛰어나므로 그 나라가 군림하여 다른 나라들을 종속시켜야 한다고 믿던 정치적 제국주의는, 적어도 지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문화적 제국주의나 경제적 제국주의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어느 한 종교가 다른 모든 종교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므로 다른 모든 종교가 그 종교로 귀속해야 한다는 '종교적 제국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종교인 사이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인데, 이제 이런 종교적 제국주의도 말끔히 청산되어야 한다."(310쪽)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 더 깊어져야 한다
2011년 문화관광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종교인 비율은 전체 국민 중 약 53%라 한다. 그 중 불교와 기독교인의 비율이 전체 종교인에서 약 7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종교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들 중 열에 여덟 명은 불교도 아니면 기독교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그간 의미 있는 소통을 위해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는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도 어둡고 추한 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기서 이러한 부정적인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다만 종교적 다원주의라는 성숙한 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노학자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종교란 결국 인간의 궁극적인 해방과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종교적 다원주의는, '진리는 하나뿐이고 확실하며 불변적이고 규범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것을 진리라고 확신하면 내 생각과 같지 않는 것은 반드시 틀린 것으로 여겨야만 한다는 '고전주의적 의식'에서 탈피하여,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나 진술은 어쩔 수 없이 역사적 여건 등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절대성이나 최종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역사의식'을 수납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선조, 우리의 행동 양식을 그래도 절대화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우상 숭배다. 따라서 자기의 상징체계를 절대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데서 한 발 물러나 모두 겸허하게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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