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PageViews   Today : 121 Yesterday : 106 Total : 5760519
Counter Status   Today : 62 Yesterday : 52 Total : 418952

그녀, 선교하려다 '사탄의 세력' 됐다
[인터뷰]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 "딸들에게 간식 해주고 싶다" 
 오마이뉴스  김세진


510일간 이어진 파업 투쟁을 마치고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얻어낸 이랜드일반노조의 홍윤경 사무국장.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눈빛엔 생기가 돌았지만 왠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투쟁의 성과를 누리고 열매를 맛보고 싶을 터. 그러나 그는 자신이 거두려는 욕망을 버리고 뿌리는 자로만 남았다. 이랜드일반노조는 평범한 아줌마들의 투쟁, 비정규직이 회사를 상대로 벌인 투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랜드일반노조는 지난 12월 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권오성)·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원규)에서 인권상을 받았다.

한 해를 넘어 다시 겨울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맞은 극적인 타결이 기뻤지만 아쉬웠다. 간부 9명이 희생했기 때문이다. "수고 많았다"는 말로 치하하기에는 희생이 컸다. 홍 사무국장의 가족도 아내와 엄마가 그리웠다. 파업을 마무리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을 마친 후, 홍 사무국장은 딸 진솔이와 고은이와 종일을 부대끼며 '엄마 노릇'을 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딸들에게 따뜻한 간식을 해주고 싶습니다"

큰 딸 진솔이는 이제 4학년이다. 진솔이에게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때 바로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다. 진솔이가 "엄마는 집에 와도 컴퓨터만 하잖아"라고 말할 때 가슴이 저리다. 곧 사춘기에 접어드는데 중학생이 되기 전에 아이가 원하는 걸 충분히 해주고 싶다. 천성이 예민한데다 엄마가 바쁜 것이 아이에게 힘들었나 보다.

진솔이는 엄마가 동생 고은이에게 1년 2개월 젖을 물린 것을 두고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질투한다. 그러나 고은이는 고은이 대로 억울하다. 고은이가 18개월에서 27개월일 때, 일주일에 단 한 번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이랜드일반노조가 파업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에 딸을 자주 못 본 엄마는 가슴이 시리고, 고은이는 7살인 지금도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

긴 시간, 허공에다 외치는 것 같아 보이는 기간에도 무너지면 안 됐다. 힘들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힘찬 목소리가 나왔지만 혼자 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지쳤다. 딸 진솔이와 고은이에게만 아니라 엄마 홍윤경 사무국장에게도 가정은 좋은 안식처다.

엄마는 돈이 없어 전기가 끊겼다는 아줌마 가장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하고, 열심히 일한 아줌마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해고하는 회사에 기가 막히고, 똑같은 일을 하고 다른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때문에 화가 난다.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할 때 무자비하게 끌려가던 아줌마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뛰고 물대포를 온 몸으로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오솔하다. 남편이 퇴근할 때 맞아주지 못한 것, 딸들이 어릴 때부터 분에 넘치게 엄마를 이해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노동건강연대에서 장기 투쟁자를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했는데, 홍 사무국장은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간부라는 책임에 '좋은 결과가 나올만한 항목'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는데도 그랬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결과를 받아들이고 지원을 통해 일주일에 두 번 심리 치료를 한다. 딸은 일주일에 한 번 놀이 치료를 한다. 노동 운동을 하다가 치료를 받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도 홍 사무국장은 "특혜를 받았다"고 말한다. 노동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엄두도 못낼 비싼 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대신 이랜드를 선교지로 택했는데"

사실 홍 사무국장은 선교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선교단체 사람들과 케냐를 여행한 후 '선교사'의 삶을 동경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꿈을 꾸다가, 1991년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랜드를 직장으로 선택했다. 아프리카 대신 경제 현장에서 '사회 선교사'로 활동할 수 있을 거란 바람을 품었다.

입사한 후 사내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다. 찬양팀에서 노래도 하였다. 회사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다. 찬양팀이 서는 기도회는 업무 외 시간에 반강제적으로 열렸다. 오전 9시에 근무를 시작하면 7시에 기도회를 여는 식이었다. 참석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었다. 또 사측은 토요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어 '성경을 한 번 읽으면 5만 원 상품권, 모임을 네 번 나오면 문화 상품권'을 준다고 공지했다. 돈으로 신앙을 사려는 듯 했다. 사측은 예배와 찬양은 열심이었지만,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쉴 곳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주차를 대행하는 아저씨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 기업 이랜드에서 기독교적이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 사무국장은 예수에게 배운 대로 '약한 자, 가난한 자'의 편에 서기로 했다. 그래서 15년 전,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이랜드 노조를 만들었다.

박성수 회장은 무노조 경영원칙을 내세우며 알게 모르게 노조를 핍박했다고 한다. 1993년 이랜드 노조가 만들어질 당시 30명의 대의원와 800명의 회원이 있었으나 곧 500명이 탈퇴했다. 회사는 '노조가 과연 성경적인가'를 질문하며 직원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에게 잦은 인사발령과 저임금으로 부당하게 대우했다.

이랜드일반노조는 핍박 속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2000년에 해를 넘기며 265일 파업해서 일정부분 임금을 올렸고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꿨다. 당시 구호는 "못 살겠다. 50만원, 먹고살자. 70만원!"이었다. 이랜드 노조는 2004년 말에도 단기계약직의 계약기간 연장 투쟁을 벌였다. 또 임금 인상과 주5일제 관련 단체교섭을 벌였다. 기독교 기업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른 모습인 이랜드의 실체가 사내에 드러나고 있었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한 이후, 까르푸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독특한 이랜드 문화를 경험했다. 기독교 기업이 들어와서 더 좋아지려니 생각했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고 이름 지은 '홈에버'는 기존 직원 휴게실과 수면실을 기도실로 바꾸었다. 쉴 곳이 없는 직원들은 복도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쉴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안 끝난 락카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 

"이랜드식 기독교는 점령군이었다"

반면 기도실 벽면에 붙은 기도제목에는 '총매출 2조 920억' '멤버십 카드 하루 20만 장 가입' 등 사업 목표가 제시되었다. 하루 목표를 채우기 위해 직원이 열심히 일해 그 결과가 나오면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순 이익 10% 사회 환원'하면서 '이웃을 돌아볼 것'을 강조하는 박성수 회장은 설 연휴에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3. 여러분을 사랑하는 이랜드 그룹 회장 박성수 드림"이라는 문자를 직원에게 보내면서 비정규직을 제외했다. 30원 짜리 문자를 못 받은 사람은 '나는 직원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비정규직은 이를 '30원짜리 차별'이라 부른다.

이뿐 아니다. 이랜드 직원에게 홈에버 5% 할인 혜택을 주면서 '이랜드 가족 5% 우대'라고 이름 붙였지만 시행 초기에 비정규직에게는 할인 혜택을 주지 않아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비정규직 직원들이 더 돈이 없는 사람들인데 사면 얼마나 산다고 그걸…. 후에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1년 이상 일한 자에게로 혜택의 범위를 넓혔다.

까르푸를 이랜드가 인수하면서 홈에버에서 일하게 된 직원들은 '추운 겨울에 스웨터를 못 입게 하고, 립스틱 색깔을 빨간 색을 발랐는지 검사하는' 회사가 자신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산원의 경우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 회사 직원이 고객처럼 와서 친절을 평가하는 '모니터링 제도'를 실시했다. 봉투를 한 손으로 줬느니,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안 했느니 하며 하나하나 감시를 당했다. 이러니 까르푸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랜드와 같이 들어온 기독교는 점령군의 종교'로 보일 뿐이었다.

홍 국장에 의하면, 이랜드는 약속까지 어겼다. 까르푸를 2006년 4월 인수하면서 까르푸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이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18개월 이상 근무한 계약원의 경우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무시하고 18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18명을 해고한다. 사 측은 단체협약을 맺을 당시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만이 단체협약의 대상이라며 '영문으로 작성한 단체협약문의 해석의 차이'를 이유로 든다. 그러나 까르푸 본사가 인정하는 대로 협약문 어디에도 '노동조합 가입자가 대상'이라는 문장은 없다.

이랜드는 뉴코아에서 일하던 350명의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킴스클럽의 계산원을 전원 외주화하면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다. 최대 17개월까지 일하고 자르는 식이다. 이때 '1일 계약서' 나 '0일 계약서'도 생긴다. 이는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면 18개월 이상 일한 비정규직에게 차별을 없애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 측이 짜낸 대책이었다. 박성수 회장이 이랜드복지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순이익의 10% 100억 여원이면 회사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박성수 회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신 기도실에 '아웃소싱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문을 붙였다.

'노동조합은 사탄의 세력' 

원하는 대로 기도문을 붙이고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한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주장하는 직원에게 박성수 회장이 '하나님은 6일을 일하셨는데 토요일 오전 근무가 성경적인가' 물었다. 노조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랜드에서 노사 갈등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사탄의 세력'이라고 규정한 면이 크게 작용한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안 된다. 노사협상을 하는 도중 홍 사무국장을 가리키며 "노조를 만든 저런 사람이 있어서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는 식이다. "대화를 진행하는 데 방해되면 제가 나갈까요?" 물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을 협의할까를 얘기하기 전에 노조의 존재에 꼬투리를 잡는 것으로 시간을 끈다. 노조에 있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이랜드는 끝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반면 삼성홈플러스테스코는 처음 협상할 때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였다. 또 이랜드는 노조가 생긴 지 10년 만에 노조위원장이 사장 얼굴을 처음 본 반면, 홈플러스는 첫 교섭 때부터 사장이 나왔다. 이랜드의 태도가 이러니 노사 관계가 꼬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삼성홈플러스테스코가 훌륭하다는 게 아니다. 삼성홈플러스테스코는 영국 자본 95%와 삼성 자본 5%로 구성되었지만 관리자의 대부분은 삼성 간부들이고 삼성은 노조가 없는 회사다. 그러나 삼성홈플러스테스코는 적어도 노조를 인격적으로는 대했다. 이랜드처럼 노조를 없어질 존재나 없는 존재처럼 대하지 않았기에 대화가 가능했다.

"간부 9명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홈플러스테스코는 처음부터 '비정규직 고용안정'에는 동의했다. 단지 투쟁 과정 가운데 해고된 노조 간부들의 복직 문제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협상을 진행해도 더 좋은 안이 나올 것 같지 않고, 간부가 희생하면 해결되는데 모든 사람이 오래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게다가 겨울을 지내기 힘들 것 같았다. 어려움 속에서 186명이 남았다. 510일간 이어진 투쟁 가운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남은 것은 이례적이다. 현재 이랜드일반노조의 투쟁이 가장 긴 투쟁으로 등록되어 있다. 케이티엑스나 기륭전자의 투쟁이 오래되었지만 그들은 해고자의 신분으로 투쟁하는 것이라 정식 등록은 안 된다. 사업장으로 돌아가면 바로 일할 수 있는데도 '해고당한 이웃' 때문에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돌아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노조 간부는 "최대한 많은 조합원이 복직하는 것"을 위해 자신들의 복직을 포기했다. 홍 사무국장은 이랜드 출신이기 때문에 이번 홈플러스의 협상과 복직과는 상관없다. 그렇지만 동료의 복직을 위해 쉬지 않았다.

이랜드의 온갖 행태를 지켜보면서 지쳤을 만한데도 "이랜드가 오라고 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홍 사무국장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당연하죠"라고 말한다. 2000년 당시 265일 파업을 할 때, 회사에서 '왜 노조를 하느냐'는 식으로 물었다. 그 때 홍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한 명의 비정규직을 어떻게 자를까 고민하는 사람과 직원 한 명의 복지를 어떻게 나아지게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 중에 누가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노조를 대하는 기독교의 두 얼굴"

이랜드기독교대책위원회가 많은 것을 도와줬다. 투쟁의 구심점이 없을 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권오성)를 점거하고 사랑의교회(목사 오정현)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는 것도 제안했다. 사랑의교회 앞에 있을 때는 지나가던 분이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하고 기도제목을 적어가기도 했다. 또 이랜드기독교대책위는 이랜드 노조가 차가운 바닥에서 투쟁하고 있던 성탄절에 와서 예배를 같이 했다. 부활절에도 함께 했다. 이랜드가 홍콩 증시 상장 반대 운동을 갔을 때,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목사님이 가셔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박성수 회장은 여전히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홈에버를 홈플러스가 인수해서 '비정규직의 정규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랜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랑의교회 앞에서 이랜드일반노조가 천막 농성을 할 때도 사랑의교회 장로 직을 내놓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도 노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말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낮은 자. 가난한 자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15년 전 예수님의 마음으로 노동 운동에 뛰어든 홍윤경 사무국장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가정에 집중하려 한다.

"노동운동을 했던 힘으로 어떤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훗날에는 여성운동이나 평화운동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시간을 많이 못썼던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할 때인 것 같아요."

신촌 문화공간 아름나라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홍윤경 사무국장의 수화기 너머로 "바쁜 일 끝나서 같이 있을 수 있다고 했잖아. 엄마, 언제 집에 와?" 묻는 진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조회 수 글쓴이 날짜
47 19금 남발 음반심의위원장 “예술 판단잣대는 성경” 1399 선재 2011.08.26
46 "악령이 출몰하는 순복음교회, 핵보다 더 무섭다!" 첨단 과학 시대의 진짜 악령들 2897 선재 2011.03.21
45 일부 기독교인들, 법당 난입 '절 무너져라' 예배? 1343 선재 2010.10.26
44 천주교, 이유 있는 "신뢰받는 종교" 부동의 1위 1347 선재 2010.09.25
43 [Why] 왜 성경만 이본(異本)이 많을까. 유석재 기자 1138 선재 2009.09.12
42 한국 교회 예수 버리고 권력 탐하다. 957 선재 2009.09.11
41 종교와 정치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1140 선재 2009.02.21
40 천주교에는 왜 주당들이 많을까? 1509 선재 2009.02.19
39 교회가 가장 열악…목회자 1명당 성도 91명 1249 선재 2009.01.27
» 그녀, 선교하려다 '사탄의 세력' 됐다 - [인터뷰]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 1860 선재 2008.12.12
37 월마트형 교회와 패스트푸드 신자 양산하는 한국교회 1296 선재 2008.12.07
36 천주교인구 증가와 개신교인구 감소추세 ... 1995년 ~ 2005년 2135 선재 2008.10.30
35 십일조 개신교인 52%..가구당 344만원 921 선재 2008.10.16
34 청와대, 이번엔 종교 성향 조사? 1169 선재 2008.05.21
33 십자가 보면서 투표하기 찜찜했는데... 961 선재 2008.03.2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우리는 감로로 공양하나니 우리에게 죽음도 이미없도다 - Designed by 선재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