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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01호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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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 탑이라면, 수행이 높았던 스님의 사리를 두는 곳이 부도이다. 구성은 석탑과 비슷해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게 된다.

이 부도는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부도가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도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기단의 네 귀퉁이마다 1마리씩 놓여 있던 사자상은 일찍이 도둑맞아 지금은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은 8각 원당(圓堂)의 기본형에서 벗어나 평면 4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 주고 있어, 한국 묘탑(墓塔)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다.

기단 구조는 7층이나 되는 돌 명부(名部)에 조식(彫飾)이 가득차 있다. 구성은 지대석이 매우 넓고, 층층의 높이와 너비에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지대석 네 모서리에는 용의 발톱 같은 조각이 땅바닥에까지 닿아서, 땅 위에 단단하게 밀착된 듯 안정감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맨 위층 갑석(甲石)에는 화려한 장막형(帳幕形)이 4면에 드리워져 있어 장엄을 더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면에는 안상(眼象)·운문(雲文)·연화문(蓮華文)·초화문(草花文)·보탑(寶塔)·신선(神仙) 등이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塔身)에는 앞뒷면에 문비형(門扉形)과 좌우에 페르시아풍의 영창(영窓)을 조각하고, 다시 영락(瓔珞)으로 장식해 놓았다. 옥개(屋蓋)는 천개형(天蓋形)으로 장막이 드리워지고, 아랫면에 해당하는 위치에 불(佛)·보살(菩薩)·봉황(鳳凰) 등의 조각이 가득하다.

상륜부(相輪部)는 앙화(仰花)·복발(覆鉢)·보개(寶蓋)·보주(寶珠)가 층층으로 올려져 있고, 그 전면에도 조식(彫飾)이 가득차 있다. 형태를 보아도 자유로운 의장으로 조형되었을 뿐 아니라, 조각이 풍부하고 정교하다. 그 반면 웅건한 기풍이 없고 기교에 치우친 점이 눈에 띄지만, 고려 부도로서 유례를 볼 수 없을만큼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탑에는 기단 네 모서리에 사자가 1구씩 있었으나 지금은 볼 수 없고, 탑 자체도 일찌기 한일합방 직후 일본 대판(大阪)까지 반출되었다가 반환되었다. 또한 6.25동란 때 포탄의 피해를 받은 것을 1957년에 보수하는 등 수난을 겪어 왔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법천사지에는 탑비가 아직 남아 있고, 탑과 비가 같이 서 있었던 건물 자리가 조사되었다.

비문에 의하면 지광국사(智光國師)의 입적(入寂)이 고려 문종 24년(1070)이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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