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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 내년에도 함께 하고픈 2016 화엄음악제의 감동
민중의소리 2016-10-26

없음
화엄음악제

어떤 음악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음악이 흐르던 풍경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 어떤 음악과 풍경은 예고 없이 되살아난다. 음악과 함께 한 과거의 시공간은 금세 오늘이 되고, 영원이 된다. 우리는 그러한 음악과 풍경의 기억을 일컬어 추억이라고 부른다. 삶은 오직 현재뿐이지만 행복으로 남는 것은 반짝이는 추억의 숫자이다.

올해 가을 나는 잊혀지지 않을 음악의 풍경 하나를 추억의 목록으로 추가했다. 10월 15일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에서 열린 화엄음악제였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화엄음악제는 대한불교 조계종 화엄사에서 주최하는 음악 축제이다. 이미 10번의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화엄음악제는 한국적이거나 전통적인 국내외의 음악을 연결하는 크로스오버 음악 축제로 자리잡았다. 그 중심에 전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이자 작곡가 원일이 있었다. 그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화엄사에서 자신의 수준 높은 안목과 견결한 작가 의식을 지켜나가는 유일무이한 축제를 선보였다.

올해로 11번째를 맞는 축제였지만 사실 축제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지난 해 화엄음악제에 다녀온 몇몇 관계자들의 전언 덕분이었다. 죽인다는 거였다. 축제 영상 하나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믿을만한 이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이야기를 하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도 신뢰를 주었다.

10월 중순의 화엄사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불사를 많이 벌인 탓에 화엄사에서 예전의 고즈넉함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서늘한 산바람과 탁 트인 하늘은 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화엄음악제의 무대는 화엄사 각황전과 대웅전 앞 마당에 설치되었다. 각황전을 병풍처럼 두고 무대가 놓였다.

공연이 시작된 것은 저녁 6시. 법고가 울고, 목어가 울고, 운판이 울었다. 그리고 종이 울었다. 아아, 그 저녁 종의 낮고 넒고 따스한 울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섬진강 강물이 밀려들 듯, 아랫목에 온돌이 달아오르듯 종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때부터였다. 화엄음악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어떻게 다른지, 느끼고 놀라고 감동한 네 시간은 바로 그 종소리에서 시작했다.

전인정 현대무용가
전인정 현대무용가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외우고, 에릭 보스그라프가 리코더를 연주하고, 음악그룹 나무와 보컬리스트 젠 슈, 에릭 보스그라프, 홍신자, 박경소, 사이먼 바커, 허윤정, 파티마 미란다가 무대에 오른 그 모든 순간을 일일이 복기하고 싶지는 않다. 공연과 공연의 사이마다 음악감독 원일이 기판을 뜯어낸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연주하고 그 소리에 맞춰 춤꾼 전인정이 역으로 쏜 조명 아래 그림자처럼 춤추던 순간에 대해서도 일일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그 모든 순간들이 새록새록 다 기억나지도 않는다.

순도 높은 정수의 음악

그러나 종소리와 함께 고요해진 화엄사에서 음악그룹 나무가 타악과 구음과 관악기를 엮어 시름을 토해내고 물결쳐 갔을 때, 그리고 젠 슈가 여러 악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영적인 목소리로 화엄사 앞마당을 채웠을 때의 감동은 여전하다. 그 순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음악이 있었다. 단지 전통적인 음악을 연주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을 산사에서 음악회를 연다고 할 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수는 무궁무진하겠지만 프로듀서 원일의 선택은 단호했다. 그는 당연히 전통음악을 연주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전통음악을 들려주면서 단지 전통적인 음악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음악을 통해 현세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을 아픔과 슬픔, 그리움과 번뇌를 껴안았고 끝내 피안으로 건너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음악들에는 한 치의 삿됨도 없고, 관객과의 영합도 없고, 서툴고 미숙함도 없었다. 오직 순도 높은 정수만이 이어졌다.

프로듀서 '원일'
프로듀서 '원일'

대개의 축제나 음악 행사들이 관객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음악인들을 결합시킴으로써 ‘대중성’과 흥행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해 프로듀서 원일은 오직 자신이 옳다고 믿고 스스로 용납한 뮤지션들만을 무대에 올린 것으로 보였다. 그 뮤지션들은 국적도 제각각이었고, 악기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일가를 이룬 이들이었고, 각 나라의 전통에 기반해 있으면서도 서로의 음악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열린 음악인들이었다. 또한 그 뮤지션들의 음악은 마음에서 출발해 영혼으로 나아가는 음악이어서 순식간에 화엄사 앞마당을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젠 슈가 오직 자신의 목소리와 하나의 악기만으로 노래했을 때, 에릭 보스그라프가 맑고 서늘하며 쓸쓸한 리코더 연주를 가을 밤에 흘려보냈을 때 음악은 가을 산사의 밤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사이먼 바커와 허윤정의 연주 역시 그러했고, 파티마 미란다의 초현실적인 보컬 역시 그러했다. 모르긴 해도 그날 밤 화엄사 앞마당은 지리산의 모든 영혼들과 함께 했을 것이며 모든 관객들의 영혼은 정갈하게 씻겼을 것이다.

단지 음악의 힘만이 아니었다. 산사 앞마당이라는 공간과 가을 밤이라는 시간의 힘이 충만했는데 연출감독 안성민과 음향, 조명감독은 화엄사 각황전이라는 옛 건물을 배경이자 오브제로 활용하며 최소한의 조명으로 탄식할만큼 절묘하게 음악과 공연을 연결했다. 빛은 문 닫은 각황전 나무창살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다가 어두워졌을 때는 무대의 연주자만을 침묵처럼 비추었다. 그리고 급기야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가 연주할 때는 모든 조명을 꺼버렸다. 그러자 객석 등 뒤로 둥실 솟아 있던 만월이 성큼 다가왔다. 달빛 아래 가야금이라니! 희미하게만 느껴졌던 달빛은 금세 음악과 함께 화엄사 앞마당을 은근하게 채웠다. 그 순간 마음에도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고, 달빛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그 달빛과 함께 있었음에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묵묵히 일러주었다.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연출은 각황전 건물을 LED처럼 사용하며 계속 빛으로 우주와 영원을 아로새겼다. 또한 공연과 공연 사이 원일과 전인정의 이중주로 인해 공연의 긴장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더욱 찬연하게 빛났다. 그 네 시간동안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빠져나갈 때 아롱아롱 하는 빛의 향연이 각황전을 맴돌다 돌연 각황전에 조명이 켜지고 각황전 좌불을 비추었을 때의 감동은 놀라울 정도였다.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처음 본 화엄음악제는 총감독 원일이 엄선한 음악인들과 예술인, 스태프들이 4시간 동안 명쾌한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 세계는 크로스오버의 세계이자, 영혼의 세계였으며, 아름다움의 세계였다. 해탈과 열반의 세계를 음악으로 구현해 화엄을 현현하게 만든 것이다. 어떠한 해설도 없고, 쉼도 없었으며, 일관되지 않은 것도 없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시공간을 연결했고, 음악을 배치했으며, 빛과 음악과 몸짓만으로 순간에서 영원으로 나아갔다. 마음을 움직인 공연은 많았으나 영혼을 움직인 공연은 드물었는데 화엄음악제는 영혼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음악 마니아를 매혹시키지 않을 수 없고, 기획자나 연출자라면 꼭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당연히 내년에도 다시 찾고 싶은 축제였다.

모두를 위해 열려 있는 화엄음악제를 기약하며

하지만 다시 짚어볼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엄음악제가 일부 음악 마니아나 음악 관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아님에도 화엄음악제를 찾은 일반 관객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다가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날 공연에는 관광객이나 화엄사의 신자로 추정되는 중장년 관객이 훨씬 많았는데 이들에게 거의 모든 뮤지션과 출연진들은 낯선 이름이었고, 이들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음악과 공연은 매우 훌륭했고,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관객들이 이 공연을 다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화엄음악제는 순도 높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제시했지만 그 공연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과 연출을 가미했다면 공연이 끝날 무렵 1/4의 관객들만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내 옆에 앉아있던 중년 부부는 음악이 난해하다며 공연 초반에 자리를 떴다. 음악과 조명, 퍼포먼스가 굉장히 감성을 자극하게 만들었음에도 이러한 방식의 음악과 공연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 강렬한 신호에 잘 응답하지 못한 것이다. 이럴 때 공연이 어떠한 설명과 디딤돌도 없이 오직 핵심적인 컨텐츠만을 고집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세상에는 설명하고 해설하고 쉽게 만든 공연이 훨씬 많으니 이렇게 핵심만을 전달하는 공연이 존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다른 모든 출연진의 공연에 비해 홍신자 공연의 밀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던 부분과 원래 3시간으로 예정했던 공연이 1시간 가량 늘어나면서 다수 관객들이 자리를 뜨게 된 부분 역시 주최측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차라리 출연자 수를 줄이고 좀 더 집중적으로 음악에 빠져들게 했다면 어땠을까? 분명 올해의 화엄음악제가 호평을 받으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보이는데 화엄음악제가 본연의 엄격함과 정결함을 지켜가면서도 더 많은 이들을 품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화엄이라는 건, 깨달음이라는 건 모두를 위해 열려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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