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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최초 진혼앨범 만들어져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봄이면 사과꽃이' 제작
2003.06.14 오마이뉴스 조호진


▲ 여순사건 진혼앨범 '봄이면 사과꽃이' 앨범 표지.
"1948년 10월 하순, 아름다운 항구도시 여수는 불바다가 되었다. 여수14연대 군인들의 봉기로 촉발된 여순 10·19사건. 이념의 칼날은 죽음과 죽임의 붉은 피에 젖어 무고한 민간인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차마 입과 가슴에조차 묻지 못한 사연들을 노래 가락 몇 사위로 삭여야했던 남도 사람들. 이제, 그 시절 옛 노래와 우리의 시가(詩歌)를 모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며 희생자들의 고혼(孤魂)에 바친다."

죽음의 역사가 남긴 피울음의 노래가 있다. 애끓는 가슴으로 숨죽여 부르던 그 노래들은 촌로(村老)와 운동권의 입을 통해 간신히 구전되어 전해져 왔지만 그 누구도 표면화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역자로 내몰릴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그 노래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던 걸까?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소장 이영진)가 그 어두운 무게를 감당했다. 지난 2001년 음반제작에 돌입한 이 단체는 2년여의 산고 끝에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진혼앨범 <봄이면 사과꽃이 -1948년 10월, 그 슬픈 영혼을 위한 진혼곡>을 순수한 시민단체 힘으로 제작·출시했다.

이념공세로 인해 반세기가 넘도록 모습을 감추다 드러낸 이 음반에는 표제곡인 '봄이면 사과꽃이(작자 미상·김원중 노래·방종서 편곡)'를 비롯해 모두 13곡의 노래와 시 낭송 '1948년 10월, 여수(박두규 시·낭송)'가 담겨 있다. 이 음반 연출은 시인이자 노래운동가인 한보리(본명 배경희)씨가 맡았다.

이 음반의 주제곡인 '봄이면 사과꽃이'를 비롯해 '추도가(안치환 노래·방종서 편곡)' '오동도 엘레지(박양희 노래·편곡)' '지리산 비가(한보리 노래)'는 모두 작자 미상으로 금지곡이었다. 이들 노래는 억울하게 희생돼 구천을 떠도는 여순사건 민간인 피해자들처럼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 채 구전가요로 반세기를 떠돌았다.

죽은 누이를 애도해 지은 '부용산(박기동 시·안성현 곡·국소남 노래·박양희 편곡)'은 작곡자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산동애가(백부전 작사·곡 전인삼 노래·박양희 편곡)'는 빨치산이 많이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곡' 취급을 당했다. 여순사건의 아픔을 담은 '여수부르스(강석오 작사·임종하 작곡·전인삼 노래·박양희 편곡)' 역시 빨갱이 노래로 분류돼 왔다.

이밖에 '가을 모후산(김해화 시·배창희 곡·이미랑 노래)' '여순동백(박두규 시·한보리 곡·김원중 노래)' '남도 길(나종영 시·한보리 곡·김원중 노래)' '그리운 나라(김기홍 시·한보리 곡·안치환 노래)' '검은 산(안준철 시·한보리 곡·정찬경 노래)' '고향(정지용 시·한보리 곡·김원중 노래)'이 수록돼 있다.

피울음의 노래가 죽음의 역사를 화해시키리라


▲ 여순사건 추모앨범 속 페이지.
여순사건의 시계 바늘은 1948년에서 몇 바늘 나아가지 못했다. 이 지역 시민들의 기억에는 죽음의 기억이 선연하고 그 맺힌 가슴에는 피멍울이 고여 있다. 날선 좌·우익의 칼끝을 누가 거두어줄 것인가. 이대로 묻어두고 갈 수도 아니 갈 수도 없는 이 비극의 아픔을 누가 씻겨줄 것인가.

피울음의 노래가 그 칼끝을 거두게 해야한다. 그 노래로 인해 우는 자는 울게 하고 말하고 싶은 자는 말하게 하면서 증오와 대립의 손을 거두고 부둥켜 안아 화해하게 해야 한다. 역사(歷史), 그 걸음은 저절로 걸어가지 않는 것. 하물며 수만의 죽음과 불바다의 참혹함으로 얼룩진 사건을 이대로 묻어둔다면 그 아픔은 불치병(不治病)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봄이면 사과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가을엔 황금이삭 물결치는 곳
아아 내 고향 푸른 들 한 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한 줄 나는 나는 알았네

불타는 저 놀가에 노을이 비껴오면
가슴에 잠기어져 그려보는 곳
아아 내 고향 들꽃 피는 그 언덕이
둘도 없는 조국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봄이면 사과꽃이' 가사 '전문')

쫓고 쫓기어
한 시대를 보낸 상처
총 칼 맞은
대꼬챙이에 찍힌
세월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에는 단풍드는 산
다리 끌고 산몬당 넘어간 사내
피묻은 발자국처럼
모후산 단풍에서는 비린내가 나네
(가을 모후산 가사 '전문')

1948년 10월, 그해 아름다운 항구 여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구도 기억조차 꺼리는 그 도시는 불바다와 잿더미로 변했고 항구도시에 살아 남은 사람들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말문이 닫힌 폐허의 도시에 어찌 노래가 있었을까마는 그 처참한 슬픔의 뒷골목에는 이런 노래가 숨죽이며 떠돌았다.

오동도를 찾아서
갈매기 날아드는 바다였건만
오늘도 찬바람이 불어 오누나
아∼아 임 없는 섬에 홀로 앉아서
그 날의 행복을 그 날의 행복을
또 다시 부른다
('오동도 엘레지' 가사 '전문')

여수는 항구였다
철석철석 파도치는 남쪽의 항구
어버이 혼이 우는 빈 터에 서서
옛날을 불러 봐도 옛날을 불러 봐도
재만 남은 이 거리에
부슬부슬 궂은 비만 내리네

여수는 항구였다
마도로스 꿈을 꾸는 꽃피는
안개 속에 기적소리 옛님을 싣고
어디로 흘러가나 어디로 흘러가나
오막살이 처마 끝에
부슬부슬 궂은 비만 내리네
('여수 불루스' 가사 '전문')

 
▲ '산동애가'의 백부전 가족사진(맨 좌측이 백부전)
전남 구례 산동마을에 살던 열 아홉 처녀 백순례(별칭 부전)는 여순사건 부역혐의로 경찰에 끌려간 셋째 오빠 백남극(여순사건 고문후유증으로 사망) 대신 죽음을 당했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 처형당한 그 처녀가 남긴 피울음의 노래와 지리산 사내들이 불렀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 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 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산동애가' 가사 '전문')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 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길 없어 헤매누나
아∼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리누나

써래봉 달빛 속에 취화목 산죽 속에
눈을 뜬 채 묻혀져간 잊지 못할 동무들아
시루봉 바라보며 누워있는 쑥밭재야
잊었느냐 피의 노래를 통곡하는 물소리를
아∼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 날린다
('지리산 비가 1·2절' 가사)

1948년의 찢겨진 아픔을 2003년을 사는 후대 시인들이 되새겼다. 지난 것은 새로운 것만 못한 것인가. 잊고 말아야 세상은 날로 번창해 가는 것인가. 피멍든 역사의 대열에 동참한 시인들은 아니다, 아니다 손사래치며 이렇게 시를 적었고 목젖 뜨거운 가수들은 이렇게 노래 불렀다.

동백꽃 붉은 여수 망망한 바다
그대는 가슴에 피 묻은 붕대를 감고
파도 소리에 뒤척이네 잠 못 이루네
푸른 하늘 서러워 동백꽃 지는 날
아직도 흐르지 못한 그 세월이
내 가슴에 흐르네 흐르고 있네
('여순동백' 가사 '전문')

"좌·우익의 모든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이 화해와 상생 하길 염원한다" 
【인터뷰】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장채열 사무국장 


▲ 장채열 사무국장.

연속된 역사적 사건임에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의 차이가 매우 크다. 한 사건은 역사적 재조명과 평가가 앞선 반면 뒷 사건은 흐지부지한 상태다. 특히, 문화예술 측면에서 그 차이는 더 심각하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등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창작물이 역사를 재조명케 한 반면, 여순사건은 매우 빈곤한 수준이다.

여순사건 진혼앨범은 이런 가운데 최초의 공식 문예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음반은 지역 시민단체의 순수한 힘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2년여의 산고 끝에 제작·출시된 이 음반과 관련하여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장채열(42) 사무국장과 인터뷰했다. 다음은 장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여순사건 진혼앨범을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20001년 12월말 당시 동사연이 추진 중이던 문화적 모색을 통해 여순사건을 조명하려던 영화 '애기섬'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 중단됐다. 그에 대한 대안을 찾던 중, 여순사건 당시 민초들이 불렀던 노래를 모아 진혼앨범을 만들기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2002년부터 음반제작에 착수하게 됐다."

-시민단체 살림이 어려운데 어떻게 제작비용을 마련했는가.
"총 3500만원 가량의 제작비가 들었다. 연구소 이사 몇 분이 사비를 털었고 또 제작에 참여한 가수, 작사자, 제작 관계자 등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그나마 최소 실비로 제작하게 됐다. 가수 김원중 씨는 다른 가난한 가수들의 참여를 요청하면서 자신의 돈으로 밥을 사는 등 깊은 애정을 쏟았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앨범인데 제작과정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었나.
"해방 전후에 불리어졌던 노래들은 대개 작자 미상의 곡이었고 또 악보도 없이 떠돌던 구전가요여서 다시 노래로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여순사건 관련 시가 거의 없어 새로이 노래를 만들기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지역 시인들이 협조해 문제가 풀렸다."

-제주 4·3의 경우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등 문예 생산물이 많았지만 여순사건과 관련된 문예 생산물은 이번 음반이 처음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순사건에 의해 촉발된 해방전후의 이념갈등을 다룬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도 여순사건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여순사건에 대한 접근이 까다로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여순사건 음반이 뒤늦게나마 나온 것처럼 향후에는 문예 생산물이 잇달았으면 좋겠다."

-이 음반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했는가.
"이 음반에 좌·우익을 떠나 당시 희생된 모든 민간인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화해와 상생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현재 여순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분분한 상태이지만 무엇보다 당시의 아픔을 녹였던 노래를 통해 좌·우 모든 피해자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란다. 늦었지만 이 음반을 여수사건에 희생된 모든 고혼에 바친다"

-향후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국회에 보류중인 '여순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통합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이 음반을 국회의원 전원에게 발송해 역사 화해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할 계획이다. 또 음반보급을 통해 사회 각계각층이 역사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화해와 청산작업에 동참을 호소할 생각이다. 이와 함께 여순사건 54주년인 올 가을에는 진혼앨범에 참여한 가수들과 함께 추모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이 음반을 구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사연 홈페이지(www.sunchonbay.or.kr)나 사무실(061-723-7134)로 연락하면 된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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